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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교육을 위한 아홉 가지 수칙

 

 

| 제 1수칙 : 철저히 공과를 준비하라.

 

  학교 교사들은 그 분야의 전공자로서 방학 때마다 재교육을 받는다. 그들은 철저히 교안을 준비해서 결재를 받는 등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방학 때면 연수 등으로 지속적인 교육을 이어간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주일학교 교사도 그 주일에 가르칠 공과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주일학교 교육의 성패는 교사의 공과 준비 여부에 달려 있다. 가능하면 공과 내용을 요약하여 숙지한 후 학생들의 눈동자를 보면서, 말씀을 그들의 가슴에 심어줄 수 잇을 정도로 철저히 공과를 준비해야 한다.

  어떤 목사님은 설교 본문을 송두리째 외워서 하는 경우를 봤다. 물론 모든 교사들이 공과의 내용을 다 외울 수는 없다. 그러나 주요 내용은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더구나 교사가 공과 시간에 공과책에 있는 내용에 매여 시선을 학생들의 눈에 두지 못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교사들이 명심할 것은 공과 시간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을 먹이는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경민's comment : 위의 글을 읽으면서‘어! 우리교회는 공과책으로 공부 안하는데? 우리교회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네!’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방금 이렇게 생각했다면 회개하시길...) 그렇다. 우리교회는 분명히 공과책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과공부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엄연히 공과 공부 시간이 있고, 공과책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공과교재도 있다. 목사님께서 비전마을 클럽에 매주 공과를 올리셨다. 이런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는 교사가 있다면 회개하시길... 그렇지만 그마져도 가끔 조회 수가 ‘1’인 것을 본다. 내가 만약 목사님이라면 짜증이 쓰나미처럼 밀려 왔을 것이다. 철저한 공과 준비만이 교사가 살고 아이들이 사는 길임을 잊지 마시길...

 

| 제 2수칙 : 매일 학생을 위해서 기도하라.

 

  반목회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고 그 나머지 시간은 모두 영적인 교통으로 이루어진 특수 목회나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매일 학생들을 위한 기도가 없다면 그 가르침은 생명력이 없는 지식 전달에 불과하다. 교사들은 주일 아침이라도 새벽에 나가서 가르침의 사역을 준비해야 한다. 목회자가 주일 설교를 앞두고 늦잠이나 자고 있겠는가! 모든 목회자들은 전쟁을 치르는 마음을 가지고 새벽부터 주일 설교를 위해서 기도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반목회를 담당하는 교사들도 그날 가르칠 말씀을 위해서 새벽부터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준비하지 못한 공과 내용은 차라리 가르치기를 포기하는 것이 백 번 낫다. 반목회에 있어서 기도가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반목회를 위한 교사들의 기도는 주일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교사의 기도는 매일 이루어져야 한다. 기도가 없는 가르침은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가르침에 기도가 없으면 교사의 말은 공중에 떠도는 소리에 불과하다. 아이들 앞에서 아무리 외치고 떠들어도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들의 영혼을 움직이는 능력 있는 교사가 되도록 매일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경민's comment : 언젠가 부산의 서부교회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놀랄 준비 하시고) 주일학교 재적이 3만 2천명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물론 실제 출석은 만 명 정도이다. 하지만 만 명이여도 실로 어마어마한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장을 방문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특별하다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찬양, 율동, 교재, 건물, 설교, 등 특별할 것이 없고, 오히려 행정, 교육, 사무 모든 것이 미흡하게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왜! 특별한 것이 없겠는가? 교사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을 위해서 철야기도를 한다. 물론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또, 주일날이면 도시락을 싸들고 새벽기도를 참석한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싸온 도시락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아이들 심방을 다니는 것이다. 이런 교사들이 있는 교회라면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보내주시지 않겠는가?

 

| 제 3수칙 : 교사의 영성 관리에 힘을 쏟으라.

 

  교사의 영성의 수준은 학생의 영혼의 질을 좌우한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교사가 깨어야 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선지자였다. 그런데도 말씀을 피해 다시스행 배를 타고 말았다. 행해 도중에도 배 밑에 내려가 달콤한 잠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날 주일학교에도 현대판 요나가 많이 있다. 물론 교사도 세상의 직업을 가졌으니 거기에 신경을 쓰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교사들이 영적인 일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세속과 손을 잡고 잠만 자고 있다면 아이들의 영혼이 어떻게 되겠는가?

  교사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아이들은 영적으로 죽는다. 교사가 영적으로 무장하고 있으면 아이들도 깨어 있기 마련이다. 교사가 정기적인 기도 생활에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한다. 교사는 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말씀과 기도에 실패하면 교사의 영성은 시들어져 버린다. 문제는 교사의 영성이다! 물론 교사들이 항상 성령 충만할 수는 없다. 교사들도 때때로 넘어지거나 좌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라! 교사의 영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많은 영혼이 같이 쓰러지고 말 것이다.

 

 경민's comment : 은아 자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은아 자매도 주일학교 교사 짬밥이 꽤 된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은아 자매는 잠이 많다. 주일 아침이면 항상 잠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그 당시 집도 멀었다.) 어느 주일 아침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조금만 더 자고 싶었다. 일어나려고 노력 했지만 눈이 도무지 떠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잠자리에서 뒹굴고 있는데, 9시를 알리는 벨이 울린 것이다. 깜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는데, 귓가에서 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우리를 볼 때 사단은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 제 4수칙 : 교사의 비전을 잃지 말라.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에서 피신해 가면서도 백성을 위해 복을 빌었다(시편 3편). 그것이 바로 다윗의 탁월한 지도력이었다. 다윗은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도 지도자로서 백성을 위해 복을 빌었다. 그는 백성을 자기 목숨과 바꿀 정도로 사랑하고 아낀 사람이었다. 이는 다윗에게 있어서 백성이 최상의 비전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지도자로서 자기 백성으로 만족했다. 마찬가지로 목회자는 교인으로 만족해야 하고, 교사는 학생으로 만족해야 한다.

  목회자가 교인에게 비전을 두지 않고 물질이나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목회자의 마음이 분산되면 목회가 되지 않는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반목회를 할 일을 다 하고 남은 시간에 일하는 부스러기 사역이 아니다. 그것은 어린 영혼을 돌보라고 세워주신 장년 목회와 동등한 사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목회자의 정신으로 어린 영혼에 마음을 쏟아 부어 반목회의 성공을 위해 힘써야 한다. 적어도 교사는 학생들을 마음에 품고 그들을 위해 목숨 걸고 복을 빌 정도가 되어야 한다. 교사의 비전은 주어진 영혼을 바로 세우는 데 있다.

 

 경민's comment : 선생님들에게 교사로서 꿈이 있는가를 물어 보고 싶다. 얼마 전에 나의 인생의 로드맵을 기록해 보았다. (로드맵이라고 해서 굉장히 거창해 보이는데 그냥 계획표) 그 중에 꿈마을, 비전마을, 은혜마을에 관하여 계획을 세워 보았는데, 그 목표를 소개하면 꿈마을은 어려서부터 주를 바로 알고 섬기는 디모데와 같이 키우는 것이다. 비전마을은 하나님의 꿈을 꾸고 세계를 품는 비전을 가진 요셉과 같이 키우는 것이다. 은혜마을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고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가는 바울과 같은 헌신자를 세우는 것이다. 나는 서나래 선생님을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에 위로와 기쁨을 얻는지 모른다. 믿음 안에 잘 자라서 이렇게 함께 교사를 하게 될 것을 한 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다. 꿈(비전)을 잃지 말고 자신의 비전을 온전히 전달해줄 수 있는 제자들을 키우시길...

 

| 제 5수칙 : 설교자의 심정을 가져라.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강의하신 한 교수님으로부터 “설교 준비를 위해서 잠 못 이루면서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고백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런 고백이 나에게 참으로 큰 도전이 되었다. 나 역시 설교 때문에 고민하고 몸부림을 치셨던 선배 목사님들처럼 고민하고 몸부림을 치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설교하는 일이라는 것을 늘 실감한다.

  주일 예배를 설교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설교자의 심정은 마치 전쟁터에 출전하러 나가는 전사의 심정과 같다. 전쟁터에서는 생사의 문제가 좌우된다. 죽느냐 사느냐가 전투의 순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설교하는 일이 그렇다. 설교하는 시간은 말씀의 권세로 사탄을 제압하느냐, 아니면 성도들을 사탄에게 빼앗기느냐가 결정되는 긴박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교사들도 설교자의 심정을 갖고 반목회에 임해야 한다. 반목회란 교회의 사역 중에 한쪽 구석에 밀려 있는 찌꺼기 사역이 아님을 기억하라. 반목회는 하나님께서 교사들에게 맡겨주신 목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공과를 준비할 때부터 몸부림을 쳐야한다. 가르칠 때는 진액을 쏟아 부어야 하며, 은혜를 끼쳐야겠다는 일념도 가져야 한다.

 

 경민's comment : 우리교회에 부교역자(교육 담당 사역자)가 없었던 기간이 한동안 있었다. 자연히 주일학교 설교는 나의 몫이 되었고, 나는 매주 설교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 본문을 무엇으로 하지? 주제는 어떻게 정하지?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효과적일까? 등 정말 일주일 내내 설교를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말씀을 보고보고 또 봤다. 주일학교 설교를 담당했던 동안 나의 삶의 모든 것이 주일학교 설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 말씀을 통해 아이들이 어떻게 변화 되었고, 어떤 도전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그 기간을 통해서 내가 말씀으로 도전받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설교자의 심장을 가지시길... 결코 타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풍성하게 될 것을 믿는다.

 

| 제 6수칙 : 본문에서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으라.

 

  설교자의 생명은 그날 설교 본문에서 설교자가 먼저 은혜를 받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설교자가 아무런 느낌과 감동이 없이 본문의 내용이 주는 교훈을 설교한다면 그것처럼 메마른 설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설교는 아무런 은혜를 끼치지 못한다. 본문에서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설교는 아무리 화려한 지식과 멋진 논리를 동원해도 영적인 감동과 은혜가 없다. 그러나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설교자가 회개의 눈물과 결단으로 준비한다거나, 감격과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하게 되면 상상할 수 없는 은혜가 임한다. 그것은 모든 목회자들의 체험이다. 살아 있는 설교는 설교자가 먼저 은혜 받은 설교이다.

  마찬가지로 교사들도 공과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본문 말씀에서 은혜를 받아야 한다. 교사가 본문에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본문을 읽고 완전히 소화해야 한다. 강해 설교에 능한 교계의 한 목사님은 본문을 50번 이상을 읽고 설교를 준비하신다고 하니 그 말씀에 생명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가 공과에 앞서 먼저 본문 말씀을 최소한 5번 이상 읽고 나서 가르치면 더없이 큰 은혜를 주실 것이다. 교사가 공과를 가르칠 때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민's comment : 우리교회는 공과를 따로 준비하지 않고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내용을 공과 시간에 아이들과 나누며 외울 말씀을 외우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렇다고 공과 준비를 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준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 (주일 전에 목사님에게 본문을 여쭤보면 흔쾌히 알려주실 것이다.) 만약 준비한 것이 없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예배 시간에 목사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들으라. 아는 말씀이라고 대충 흘려듣지 말고 말씀을 청종해서 듣기를 바란다. 분명히 성령님께서 지금 아이들에게 어떤 말씀이 필요한지 깨닫게 하실 것이다.

 

| 제 7수칙 : 본을 보여라.

 

  언젠가 초등학교 5학년쯤 되는 한 어린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입을 비쭉거리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 내용인즉,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평소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밥을 먹을 때 편식하면 안 된다고 입이 닳도록 가르쳐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식당에서 선생님이 학생들과 같이 밥을 먹는데 편식하지 말라고 그렇게 가르쳐 왔던 선생님이 김 하나에 밥을 다 먹어 치우고 다른 반찬은 손도 안대고 버리더란다. 문제는 그날 내내 반 아이들이 여기저기에서 수군댔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반찬을 하나도 먹지도 않고 우리한테는 편식하지 말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한 말을 잃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그 말씀에 힘을 잃어 가는 것을 생각할 때 씁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일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 교사들이 가르친 대로 살아야 하며, 모든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예를 들면 시간에 맞춰 예배를 참석하는 일이나, 예배를 드리는 자세 등에서도 모범을 보어지 않으면 학생들의 마음은 이미 분산되고 만다. 교사는 범사에 본을 보여야 한다.

 

 경민's comment : 교사들을 볼 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사실 안타까운 것이 한 가지는 아니다.) 그것은 바로 선생님이 본을 보이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배시간에 지각하는 선생님, 심지어 예배를 참석하지 않는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둔 학생은 100% 지각과 예배에 결석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백 마디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한 번의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아이들은 변한다. 쉽게 예를 들어 찬양, 율동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을 때 선생님이 먼저 찬양과 율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따라 하게 되어 있다. 주일학교 예배를 드릴 때 그것을 아이들만 드리는 예배로 착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예배에 있어서 관객은 없다. 그 자리에 없으면 모르겠지만 예배드리는 곳에 함께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라.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를...

 

| 제 8수칙 : 시청각 자료를 사용하라.

 

  어떤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선교지에서 아이들에게 글 없는 종이를 가지고 더듬거리면서 전도했는데 예수님을 쉽게 영접하더라는 간증이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시청각 자료보다 더 좋은 교제는 없다. 시청각 교재는 유.초등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반목회 사역을 담당하는 모든 교사들은 어느 부서에서든지 시청각 교재가 유익하다. 시청각 교재는 교육 효과를 높이는 수단이다.

  사람의 기억 능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통계가 있다. 눈으로 읽은 것의 10% 정도 기억할 수 있고, 들은 것의 20%, 본 것의 30%, 보고 들은 것의 50%, 소리 내어 읽은 것의 70%, 그리고 스스로 해 본 것의 90%정도를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시청각 자료를 사용하면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요즘은 각 교단이나 선교 단체에서 계발해 낸 교제가 많아서 조금만 신경을 쓰면 좋은 시청각 교재 및 보조 교재를 사용할 수 있다. 교회적으로 준비할 시청각 자료들은 OHP, 슬라이드, TV나 비디오, 컴퓨터 등이 있다. 좀 더 신경을 쓴다면 빔 프로젝트를 통한 교육도 시도하면 큰 효과를 볼 것이다.

 

 경민's comment : 놀토바이블캠프에 참석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는 말씀을 암송해야했다. 나는 미리 그 말씀을 컴퓨터로 출력(예쁘게 만들지도 않았다. 시간도 별로 들지 않았다. 그냥 말씀만 적어 놓았을 뿐이다.)을 하여 캠프로 이동하는 중에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함께 외우면서 캠프를 하는 교회까지 갔다. 우리 아이들이 말씀을 외우는 훈련이 잘 되어 있기도 하지만 미리 적어 놓은 종이를 보고 아이들은 신나하면서 말씀을 외웠다. 그 결과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우리는 함께 모여 한 번만 맞춰보고 심사에 통과하여 1등으로 밥을 먹는 영광(먹든지 마시든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임으로... 히히히...)을 얻었다. 주지혜 사모를 다 알 것이다. 주지혜 사모도 주일학교 교사 짬밥이 쫌 된다. 주지혜 사모는 교사를 할 때(그 당시에는 공과책을 가지고 공부했다.) 공과의 내용을 항상 그림으로 그렸다. 처음에는 그림의 수준이 별로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의 수준이 점차 발전되는 것을 느꼈다. 주지혜 사모도 그렇게까지 자신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처음 시작할 때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 재능이 없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도 시작해 보시라. 하나님께서 분명히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실 것이다. (훗날에 생각지도 못했던 재능으로 성공하게 되면 크게 한 턱 쏘시길...)

 

| 제 9수칙 : 교사의 권위를 지켜라.

 

  한국 개화기 무렵의 기독교는 교육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일제 강점기의 구국 운동에 앞장선 수많은 선혈들이 교회 교육을 통해서 애국정신과 이웃 사랑의 정신을 배웠다. 개화에 앞장선 선구자들 역시 기독교인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주일학교 교육을 통해서 사회 개화와 변혁 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그만큼 교회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교회 교육이 학교 교육 현장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지금 학교에서는 각 교실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비디오테이프로 공부하며, 인터넷으로 세계를 오가면서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교회 교육의 현실을 보면 아직도 옛날 방식 그대로다. 중형이상의 교회에서도 컴퓨터는커녕 제대로 교육 시설조차 갖춘 교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실정이니 교회 교육이 21세기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앞으로 각 교회에서 교육의 개선을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해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권위의 문제라고 본다. 만약 그것마저 떨어지면 교회 교육은 벼랑 끝으로 밀려나고 말 것이다. 교육 시설이나 환경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교사가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가르친다면 교육 효과는 더없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교사들이 권위를 지켜야 한다. 물론 반목회에 있어서 교사의 권위는 외형에 있지 않다. 교사의 권위는 말씀이 주는 권위요, 거룩한 삶에서 스며져 나오는 영적인 권위를 말한다.

 

 경민's comment : 요즘 같은 첨단을 걷고 있는 세상에, 교회에서 iPad 하나씩 나누어 주고, 그것으로 성경을 보면서 찬양도 하고 율동도 따라하면서 함께 예배하고, 또 교육할 때도 그것을 이용해 교육한다면 상상만 해도 효과가 굉장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단 한 가지는 영적인 권위이다. ‘선주’라는 아이가 있었다. 신민철 선생님 또래로 기억이 되는데(정확치는 않다.) 선주가 주일학교 학생일 때 특별활동으로 음식 만들기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선주의 담임이 바로 나였다. 그 때 우리는 김밥을 만들었는데, 내가 맨손으로 밥을 주물럭거리는 바람에 나는 ‘더러운 김밥’이라는 별명으로 2년을 선주에게 온갖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선주의 입에서 ‘더러운 김밥’이라는 호칭대신 깍듯한 인사와 함께‘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쓰이기 시작했다. 결코 내가 잘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권위를 세워주신 것이다. 요즘에도 가끔 보면 아이들이 신민철 선생님에게 ‘거북이’라고 하면서 달라붙어서 귀찮게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피식하고 혼자 웃게 된다. 바로 옛날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교사의 직분을 함부로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다. 천사도 흠모할 만큼 값진 직분이다. 교사들이여! 자부심을 가지고 새롭게 일어나기를 바란다.

 

 

『교사는 또 다른 목회자』중에서 -송삼용 지음, 도서출판 브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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