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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 1:35 - 1:45 ] |
(찬송358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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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전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후 사역지를 정하십니다. 거기서 한 나병환자를 고치신 후 침묵을 명령하셨지만 듣지 않아 다시 한적한 곳으로 떠나셔야 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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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사역지를 정하시다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다시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시다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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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절 예수께서 광야 같은 현실을 이기신 길은 ‘광야’를 찾아 하나님의 길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은 부당한 오해와 곤욕을 당하거나 그릇된 찬사와 기대를 받을 때, 자신의 소명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새롭게 결단할 수 있게 하는 영적 수원지였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고는 세상과의 ‘맞섬’도 없습니다. 올 한 해 광야를 지나기 전에 내게도 이런 떠남과 만남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36~39절 “모든 사람이 주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도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서 전도”하기로 결정하십니다. 제자들의 보고가 틀려서가 아닙니다. 다른 마을이 더 중요해서도 아닙니다. 인기나 명예는 무조건 피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기가 있든 없든, 고난이 기다리든 성공이 기다리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곳에 가는 것이 예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 그대로 실현되는 곳에 임합니다. 내가 머물고 떠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41~45절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대어 깨끗하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손을 대어도 부정해지지 않는 것은, 친히 속죄양이 되시어 그를 부정하게 한 사망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정결규례를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결한 삶을 향한 갈망과 부정한 자들을 향한 연민은 먼저 나를 정결케 하신 은총을 기억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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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5절 나병환자는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께 나아와 치유를 간구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할 만큼(‘원하시면’) 겸손했습니다. 하지만 치유 과정을 발설하지 말라는 말에는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불순종의 열심보다 순종의 침묵이 하나님 나라에 보탬이 됩니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믿음뿐 아니라, 주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까지도 멈추는 믿음도 요구하십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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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 말씀의 교제를 위해 저만의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는 기쁨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열방 - 양승봉, 신경희 선교사(네팔)가 안식년(2년) 동안 쉼과 후반기 사역 준비를 잘 할 수 있도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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