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 베드로의 장모 집에 돌아오신 예수님은 입구까지 가득 메운 무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를 조곤조곤 설명해주셨습니다. 치유나 기적 같은 극적인 활동을 갈망하던 이들은 실망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르침이 없는 기적은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오해만 더 키울 수 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말씀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은 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극적인 결과도 당장 안 나타나지만, 실은 가장 빠른 길이고 옳은 길이고 효과적인 길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감성만 자극하기보다는 체계적인 말씀 훈련으로 양육하고 있습니까?
4,5절 가르침을 중단시키고 남의 집을 손상하면서까지 치유 받기를 원하여 예수께 나아온 네 사람과 중풍병자의 행동을 ‘믿음’으로 간주하십니다. 상식과 관습을 벗어난 급진적인 행동이었지만, 주님은 체면이나 염치, 사회적 통념 안에 갇혀서는 이 세상 가치관을 전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아신 것입니다. 상식과 예의를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예수님 편에 서기 위해 희생이나 손해를 무릅쓰는 용기, 또 앎을 삶으로 옮겨내는 결단력입니다. 영혼의 중풍병을 앓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내가 믿음으로 실천할 일은 무엇입니까?
5~11절 서기관들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궁금해하자(7절),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위임 받은 자 외에는 없으며, 인자가 그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답해주십니다. 이젠 성전이나 속죄 제물이 아니라, 성전보다 더 크시고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그런 자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