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5절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여 자신의 종으로 삼으셨기에, 아무도 그들을 종으로 삼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죄의 종’이던 인류를 ‘의의 종’으로 삼으심으로써(로마서 6장 17~18절) 궁극적으로 성취하셨습니다. 다른 지체들이나 이웃을 대할 때, 하나님의 종인 내 신분을 기억하면서 의롭고 자비로운 주인의 성품에 어울리게 살고 있습니까?
39~46절 큰 빚을 져서 자기 몸을 팔 수밖에 없는 형제를 종처럼 대하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처럼 대하다가, 희년이 되면 그동안 낳은 자녀들과 함께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도록 보내주라고 주인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노예제도는 구휼제도에 가까웠으며, 따라서 종들은 노예 신분일지라도 자유로웠고 그 사회에서 고립되지도 않았습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직접 값을 지불하고 해방될 수 있었고, 가까운 친족이 구속할 수도 있었으며, 그러지 못할 때는 희년까지 기다렸습니다.
43,46,53절 아무리 종의 처지에 있을지라도 동족을 엄하게 부리지 말라고 반복하여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모질게 굴었던 바로 아래서의 노예 생활(출 1:13-14)과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되어 선물로 받은 땅에서 풍요를 누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동료나 부하나 직원들을 내 가족에게 하듯 인격적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약자로서 우리 민족이 겪었던 설움과 차별을 잊은 채 외국인 노동자나 새터민, 장애우들을 냉혹하게 대하는 현실에 관심을 갖고, 이런 상황이 개선되도록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47~55절 이스라엘 사람이 거류민이나 동거인에게 팔려 갔을 경우, 가까운 가족은 구속자가 되어 희년을 기점으로 속전을 계산하여 친족을 구해내라고 하십니다. 이방인 주인은 이스라엘 사람을 종을 다루듯 엄하게 부리지 말고, 매년 삯꾼과 같이 여기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람보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여 사람을 자원 다루듯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공의롭지 않은 경제 질서 아래서 신음하는 이들과 함께하시면서, 우리가 그런 세상에 침묵하지 않고 더불어 살 궁리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